5화
마감

1
5월 13일 목요일 밤 열한 시 오십일 분, 박영선은 카드 단말기를 세 번째로 껐다 켰다.
“단말기가 안 돼요.”
안쪽 테이블의 넷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영선은 그 넷을 지난 9월부터 봐 왔다. 처음엔 둘이었다. 서로 안 쳐다보면서 소주만 비우던 여자와 남자. 1월에 안경 쓴 남자가 유리문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들어와 셋이 됐다. 3월에 사이다를 마시던 여자가 넷이 됐다. 넷은 매주 목요일 열한 시 반에 왔고, 잔을 채우는 순서가 있었고, 영선은 그 순서를 이제 외우고 있었다. 무슨 일 하는 사람들인지는 몰랐다. 컴퓨터 쪽이라는 것만 알았다. 지난 10월에 그 남자, 도현이라는 사람이 영선의 단말기를 새것으로 바꿔줬다. 자기 회사 거라고 했다. 수수료가 싸다고 했다. 실제로 쌌다.
그 단말기가 지금 “승인 실패”만 뱉고 있었다.
“아까 열한 시 반에 계산한 손님은 됐는데.” 영선이 말했다. “옆집도 안 된대요. 방금 전화 왔어.”
도현이 일어나서 단말기를 봤다. 영선은 그가 단말기를 만지려다 손을 거두는 걸 봤다. 이상한 동작이었다. 만지려던 손이 공중에서 멈추고 주머니로 들어갔다.
“팀장님.” 도현이 말했다. “저희 거예요.”
여자가, 지안이라는 사람이 휴대폰을 뒤집어 봤다. 화면에 뭔가 떠 있었다. 영선이 보기에 그 여자는 화면을 읽고, 그리고 휴대폰을 다시 엎었다. 테이블에. 소리가 났다.
“온콜한테 갔어. 하늘이야. 우리는 아니야.”
“우리 거잖아요.”
“우리 거고, 우리는 취했어.”
2
영선은 그 뒤의 대화를 절반쯤만 알아들었다. 카운터에서 손님 둘의 계산을 현금으로 받고, 옆집에 다시 전화하고, 단말기를 한 번 더 껐다 켜는 사이사이로 들린 것들이었다.
“하늘이 지금 뭐 보고 있어요.”
“pos-gateway 5xx 100%. 다른 건 다 정상. 온라인 결제는 되고 있어. 단말기만이야.”
“열한 시 오십 분에 시작한 게 뭐예요. 배포 없고, 플래그 없고, 배치 없는 시간인데.”
“시각이 딱 맞으면 만료나 예약부터 봐야겠네.”
“인증서.”
“pos-gateway 인증서 따로 있죠. 메인 API랑 별개로. 작년에 단말기 출시할 때.”
지안이 엎어둔 휴대폰을 봤다. 집지는 않았다.
“우리가 확인하면 안 돼.”
“확인만요. 읽기만.”
“읽는 것도 접근이야. 규정에 접근이라고 돼 있어. 내가 그렇게 썼어.” 지안은 잠깐 있다가. “힌트는 접근이 아니야. 하늘한테 뭘 보라고 말하는 건 돼. 보는 건 하늘이 봐.”
도현이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쳤다. 영선은 그가 두 줄쯤 치고 보내는 걸 봤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지안처럼 엎었다.
안경 쓴 남자, 민석이라는 사람은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영선은 그 사람이 넷 중에 제일 높은 사람이라는 걸 3월쯤 눈치챘다. 제일 높은 사람이 제일 말을 안 했다.
사이다 여자, 유리라는 사람은 오늘은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온콜이 아니라고 했었다. 그 여자는 휴대폰을 꺼내지도 않았다. 남의 회사 일이라고, 언젠가 영선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열두 시 삼 분, 도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도현은 뒤집어서 읽고, 지안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영선은 카운터에서 그걸 봤다. 지안이 화면을 보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료 23:50:12. 발급 2026-05-13. 1년짜리.” 도현이 읽었다. “하늘이가 발급 작업 기록도 찾았는데, 작업자가.”
“알아.” 지안이 말했다. “내가 만들었어.”
3
영선은 그 말 뒤의 침묵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침묵이 있다는 건 알았다.
“작년 5월에 단말기 출시가 일주일 당겨졌어. 메인 API 인증서는 자동 갱신인데 pos-gateway는 도메인이 달라서 자동 갱신에 안 들어갔고, 출시 전날 내가 수동으로 1년짜리 발급했어. 갱신 등록은 출시 끝나고 하려고 했고. 안 했어.” 지안은 잔을 봤다. 비어 있었다. 채우지 않았다. “1월에 콘솔 밖 토큰 전수 조사할 때 인증서도 스프레드시트에 있었어. ‘확인 필요’. 담당자 칸 비어 있었고. 토큰 다 끝나서 액션 아이템 완료 처리했어. 인증서는 범위 밖이라고.”
“제가 완료 처리했어요.” 민석이 말했다. 넷 중 처음으로 낸 소리였다. “그 줄 따로 처리한다고 해놓고, 끝내 담당자를 안 붙였어요.”
“그건 나중에 하고요.” 도현이 말했다. “갱신하면 돼요. 하늘이 갱신 명령은 알아요. 근데 pos-gateway 인증서 교체는 게이트 승인 두 명이에요. 11월 이후로.”
“승인자는 누구한테 알림 갔어.”
“저하고 팀장님요. 등록 순서대로 두 명한테 가요. 응답 없으면 다음 사람한테 넘어가고요.”
“그다음은.”
“세훈 님, 은서 님. 30분 뒤에요.”
영선은 벽시계를 봤다. 손님 하나가 지갑 속을 뒤지다 빈손을 꺼냈다.
“온콜은 교대표가 있는데 승인자는 그냥 명단이에요.” 도현이 말했다. “야간에도 두 명이 받을 수 있는지는 안 봤어요. 명단은 제가 넣었고요.”
“승인은 접근이야.” 지안이 말했다.
“한 번 누르는 거예요.”
“한 번 눌러도 교체가 나가. 인증서가 맞는지, 어디에 바꾸는지 봐야 해. 지금 내가 그걸 봤다고 승인할 수는 없어.”
“세훈 님은 아까 퇴근했고, 은서 님도 지금 자겠네요. 브레이크글라스는 팀장님 건데 팀장님도 지금.”
“취했지.”
영선은 그 대화를 들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하나 이해했다. 이 넷은 지금 자기들 것이 고장 났고, 고칠 줄 알고, 휴대폰 하나로 고칠 수 있는데, 고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왜 안 고쳐요.” 영선은 카운터에서 물었다. 물을 생각은 없었는데 물어졌다. 손님 셋이 계산을 못 하고 서 있었다.
지안이 영선을 봤다.
“취해서요.”
“취한 건 맞지.” 영선이 말했다. 그러고는, 이유는 모르지만, 덧붙였다. “그럼 안 취한 사람을 깨워요.”
민석이 휴대폰을 꺼냈다.
4
열두 시 십 분부터 열두 시 십구 분까지, 영선은 안경 쓴 남자가 술집 구석에서 사람들을 깨우는 걸 봤다. 첫 번째 전화는 안 받았다. 두 번째 전화에 받았다. “세훈 님, 강민석입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술 안 드셨죠? 네. 인증서 교체 검토가 필요합니다. 하늘이한테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다음 전화도 세 번 만에 받았다. “은서 님. 네, 본부장입니다. 자정에 죄송합니다.”
영선은 저 남자가 저 사람들 중 제일 높다는 것과, 제일 높은 사람이 제일 미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있다는 것을 같이 봤다.
열두 시 이십오 분, 도현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도현은 이번엔 뒤집어 읽고 지안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말했다.
“갱신됐어요. 하늘이가 했어요. 세훈 님, 은서 님 승인.”
열두 시 이십팔 분, 영선의 단말기가 “승인”을 뱉었다. 손님 셋이 한꺼번에 계산을 했다. 옆집에서 전화가 왔다. 된다고 했다.
38분이었다. 영선은 나중에 그 숫자를 도현에게 들었다. 옆집까지 가맹점 1만 2천 곳, 그 38분 동안 승인 실패 4만 건. 영선의 가게에서는 현금과 계좌이체를 받았다. 끝내 계산을 못 한 손님에게는 전화번호를 받았다. 다른 가게들은 어떻게 넘겼는지 몰랐다.
“오늘 매출 얼마 날렸어요.” 도현이 물었다.
“포장 셋 취소했어. 한 7만 원.” 영선이 말했다. “됐어. 그 정도는.”
“아니요. 안 됐어요.” 도현은 휴대폰에 뭔가 적었다. “가맹점 보상 기준 있어요. 내일 세훈 님한테.”
“컴퓨터로 되는 걸 왜 사람이 밤에 깨서 눌러야 돼요.” 영선이 물었다. 순수하게 궁금해서였다.
“위험한 변경에 승인을 붙이다가 갱신도 같이 묶었어요.” 지안이 대답했다. “밤에 누가 받을지는 빼먹었고요.”
“그럼 어떻게 해요.”
“안 취한 사람을 깨워요.” 지안이 말했다. “사장님이 그러셨잖아요.”
5
넷은 열두 시 사십 분에 계산을 했다. 단말기로. 지안이 카드를 내밀었고, 영선은 승인이 뜨는 걸 넷이 다 쳐다보는 걸 봤다. 승인.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유리가 잠깐 웃었다.
유리문 앞에서 지안이 멈췄다.
“인증서 갱신 자동화, 내일 제가 올릴게요. 도메인 다른 것까지 전부.”
“그 제안 하늘 씨한테 보내주세요.” 민석이 말했다. “이번 초안은 하늘 씨가 쓰고, 우리는 작업 기록을 붙입시다.”
“하늘이 신입이에요.”
“그래서 검토는 같이 해야죠. 복구한 사람이 어떤 데서 막혔는지 먼저 쓰게 합시다.” 민석은 안경을 고쳐 썼다. “저는 조사 완료 처리한 경위를 보내겠습니다.”
“승인자 명단하고 다음 사람 부르는 데 걸린 시간은 제가요.” 도현이 말했다.
“저는요.” 유리가 물었다.
“오늘 들은 말 중에 우리가 빼먹은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넷이 나갔다. 영선은 문에 ‘정산 중, 잠시 쉬어갑니다’ 팻말을 걸고 TV를 봤다. 오늘 경기의 재방송이 끝나가고 있었다. 9회 말이었다. 겨우내 보던 지난 시즌 경기 대신 올해 선수들이 뛰고 있었다. 영선은 누가 이기고 있는지 몰랐다. 단말기 옆에 도현이 두고 간 메모가 있었다. “가맹점 보상 신청. 내일 제가 대신 넣을게요. 영수증 버리지 마세요.”
영선은 영수증을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TV를 껐다. 다음 주 목요일 열한 시 반에 넷이 올 것이었다. 잔은 지안 먼저였다. 그건 알고 있었다.